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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운명(運命)이다!

2024-03-03 오후 18:09:05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은 나도 모르게 흘러간다.

 

형 누나 동생도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내 곁에 있다.

 

유치원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도 그렇다.

 

군대에가고 직장에 가면서부터 나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만나고 사랑하는 중요한 결정을 한다.

 

내가 말이다.

 

하지만 그 결정은 이미 예정된 것.

 

내가 선택한것 같지만 이미 정해진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렇듯 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살아 가다보면 세상의 이치를 깨닳을수 있다고 믿지만…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만 더 깊어만가는 그런 여정이다. 

 

삶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결국 알 수 없는 생의 의문만 품고 살아가는 서글픈 인생의 연속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 하고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는 환히를 느끼기도 하지만 인생의 본질에 대한 해답에는 이르지 못한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이 나아갈길은 이미 예정되고 정해졌다.

 

운명(運命)이며 필연(必然)이다.

 

예측하기 어렵고 누구라도 거역할수 없고 따를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필연의 절대적인 힘.

운명(運命)

 

사람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만물이 운명의 사슬에 묶여있다. 비합리적 · 초논리적인 힘으로 말이다.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숙명(宿命)'·

 

인간의 힘으로는 거역할수 없는 하늘의 명령' 천명(天命)' 이라고도 한다.

 

‘몫’이라는 의미인 모이라(moira).

 

그리스인들은 운명을 몫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삶은 내 몫이 정해진 것이다.

 

영어에서는 운명을 destiny라고 말한다.

 

‘사전에 결정한다’라는 의미다.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뜻이다.

 

아랍어에서도 카다르(qadar) '몫' 혹은 '신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표현한다.

 

‘생각’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말이있다.

 

생각은 말이되고 말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은 습관으로 굳어지고 인격으로 형성돼 결국 운명이 된다.

운명은 필연적인 나의 생각에서 온다. 

 

한 부모의 슬하에서 태어난 자식들도 각자의 독특한 성격을 갖고 태어난다.

 

이렇듯 모든 만물은 이미 다 결정돼 있다.

 

우리 생은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숙명(宿命)'이다.

 

숙명을 갖고 태어난 우리의 삶의 과정이 운명인 것.

 

숙명 이라는 시간에 갖힌 운명을 살아가고 있다.

 

운명은 100% 정해져 있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노력 자체도 운명이라는 굴레의 일부분이다.

 

노력도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선천적으로 타고 난 운명의 일부이자 숙명인 것이다.

 

운명에 정해진 내 삶을 찾아가는 것이 노력이다.

 

노력은 내 숙명의 공간을 찾아나서는 것이기에 운명을 바꿀수는 없다.

 

정해진 운명속에도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공지영 작가님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은 얼마나 공평하지 않느냐면, 저 나쁜 인간들이 사는 곳에 맑고 투명한 햇빛이 충분히 쏟아질 만큼 불공평하다’

 

이처럼 불공평한 세상을 미움과 증오와 분노로만 바라보면 그 사람의 생은 정말로 불행해진다.

 

불공평을 미움과 증오와 분노로 바라보지 않고 이해와 사랑하는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조금 덜 불행한 운명을 살아갈 수 있다.

 

참기 힘든 유혹을 뿌리치고 바르고 선하게 살면 우리의 운명에 변수가 생기고 이는 신이 허락한 숙명의 반전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가올 미래를 궁금해하고 내다보려 한다.

 

즉,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아보려한다.

 

이는 자신에게 닥칠 나쁜일과 좋은일을 알아내 나쁜일은 막고 좋은 일은 더크게 하려는 인간의 욕심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쁜 것을 피하고 좋은일을 크게 할 수 있다면 운명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선을 의식하고 행하지 않으면 삶은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간다.

 

생각은 감정을, 감정은 행동을, 행동은 결과를 낳는다.

 

생각 이전에 선함이 닿아야 운명이 바뀐다.

 

위선과 미움과 분노와 증오을 품고서는 운명이라는 벽을 허물고 사랑의 울림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운명론(運命論)

 

인간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으며, 인간은 그 운명에 항거할 수 없는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운명론과 비유되는 예정론(豫定論)

 

인간의 구원은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으며, 신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가 미리 정한 바를 실현시켜 나간다는 교리의 이론이다.

 

기독교 예정론은 신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한 특별섭리로, 명리학 운명론은 신에 의해서 위임된 일반 섭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미국 출신의 작가이자 강사인 데일 카네기의 저서 ‘자기관리론’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말고, 또한 따라하지도 말라’, ‘운명에 거스르려 하지말고,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해라. 다른 사람에게 작으나마 행복을 주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잊을 수 있다는걸 명심하라’는 말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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