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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군 탄생과 주민자치

연영찬 기자

2023-08-24 오전 08:57:21


 

지난 2003년 8월 3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의원 입법으로 출범한 기초지방자치단체 증평군.

 

증평군 탄생은 국회에서의 입법과정을 통해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지역 주민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처럼 증평군이 탄생하기까지 군민들의 자치단체 설립을 위한 주민운동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지난 1963년 증평지방행정구역변경추진위원회(증평군추진위원회·위원장 정승화)에서 증평군을 추진한 것을 시작으로 1989년 증평읍시승격추진위원회(위원장 김건수)가 결성돼 증평시 승격을 추진했었다.

 

그 후 1990년 12월 31일 충청북도 증평출장소가 개청되고 독립자치단체로 만들고자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높아만 갔다.

 

괴산군과 증평출장소는 지방자치법상 동일군에 속해 있으면서도 행정은 이원화가 되어 있었고, 증평출장소는 충청북도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증평출장소 주민들은 괴산군수 선거와 군의원 선거를 하지만 괴산군수와 괴산군의회 의원들은 증평출장소의 행정에 관여할 수 없었다.

 

증평출장소 주민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 괴산군수와 괴산군의회의원들은 출장소의 행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기에 주민들은 참정권이 제한되고 있는 지방자치의 사각지대라며 자치단체 설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1998년 6월 18일 충청북도 증평출장소 폐지 방침을 발표한 이후 자치단체 설립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주민들은 증평출장소 폐지 반대 분향소를 설치하고 삭발식을 거행하는 등 강력하게 항거해 폐지를 막아냈다.

증평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자치단체 설립 운동은 드디어 제도 정치권을 움직이지 시작했다.

 

‘정우택(자유민주연합, 진천·괴산·음성) 국회 의원이 2002년 4월 8일 229회 임시국회에서 ‘증평군 설치에 관한 법률안' 을 대표 발의한다. 

 

2003년 4월 30일 ‘증평군 설치에 관한 법률안'이 행정자치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날 오후 2시 최종 단계인 본회의에 상정됐다.

 

 ‘재적 272, 재석 145, 찬성 76, 반대 52, 기권 17’

 

재적의원 272명의 과반수인 145명(53.3%)이 출석했고, 출석의원 의 52.4%인 76명이 찬성했다. 

 

가결 정족수 73명보다 3명이 더 많 아 ‘증평군 설치에 관한 법률안'은 통과됐다.

 

증평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증평군 설치 과정은 주민자치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당시 증평군 설립에 부정적이었던 학계, 시민단체, 정치권을 설득한 주체가 바로 주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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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자치단체 설립운동을 펼쳤던 몇몇 핵심 관계자들은 생업을 포기하는 열정으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자발적인 주민자치의 실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소중한 주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증평군의 주민자치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방정치에 주민 참여는 기본이다.

 

지방자치와 관치는 주민자치 즉, 주민참여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행정은 지방자치라는 빈껍데기만 쓴 단체장의 독선행정으로 변모해 지역발전과 주민화합을 저해한다.

 

대한민국 헌정상 초유의 주민운동으로 출범한 증평군이지만 주민들의 의사는 온데간데 없다.

 

증평군에서는 군 개청 20주년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군 설치를 위해 온몸을 던져 희생했던 사람들의 뜻은 기념행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군 개청 20주년. 증평군청이 시작된지 20년이라는 의미다.

 

이는 증평군 설치, 증평군 탄생 이라는 의미보다 증평군청이 개청됐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주민들 중심의 증평군 탄생, 관 위주의 증평군 개청, 이라고 선을 긋는 나의 편협한 생각이 당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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