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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選擇)과 정의(正義)

연영찬 기자

2021-09-24 오후 15:42:45


 

 

인간은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이 최선인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때도 있다.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선택, 불이익을 수반하는 선택, 그리고 이익도 불이익도 없는 그저그런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나의 입장에서의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최선의 선택은 상대방에게는 고약한 선택일 것이고 나에게 고약한 선택은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물론 경쟁관계에서 말이다.

 

선택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공정하고 정의로웠냐가 더 중요하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정의에 대한 생각의 문을 열어 주었다.

 

쾌락이 클수록, 고통은 적을수록 행복은 증가한다’,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의 극대화‘,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많게 하는데 있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실현은 윤리적 행위의 목적으로 공리의 극대화 추구는 무엇이든 옳다는 결과론적 효용성을 강조했다. 다수의 행복을 보장한다면 과정이 어떻든 정의롭다는 것이다. 1884년 영국선원 네 명이 작은 구명보트에 표류하다가 24일만에 3명의 생존자가 구조됐다.

 

하지만 3명의 모두 법정에 서게 된다.

 

식량이 바닥이나자 생존을 위해 어린 선원 파커를 죽이고 인육을 먹었기 때문. 식량이 없어서 4명의 선원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병에 걸려 곧 죽을 어린 파커를죽여 인육을 먹은 것은 정당하다고 피고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어린 파커의 무고한 희생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당신은 살기 위해 파커를 죽인 선원 3명을 살인죄로 판결하겠는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의 정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행복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인권을 제한한다고 하면 무고한 희생도 정당한 것인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볼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수를 위해 소수의 인권이 제한되고 무고하게 희생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이렇듯 공리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옳고 그름, 정의와 부당함에 관한 많은 이견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낙태에 대한 반대와 옹호,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가난한 자를 돕는게 공정하다는 생각과 노력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는 행위는 공정치 않다는 생각, 그리고 대학입시제도에서 소수집단에 대한 우대정책에 대한 찬반, 테러 용의자를 고문하는 행위에 대한 찬반 등.

 

이러한 찬반의 갈등속의 도덕적 딜레마(moral dilemma)정의와 부당함,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을 둘러싼 주장들이 경쟁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헤쳐 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마이클 셀던은 이책을 통해 답하고자 했다.

 

셀던은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사회 구성원의 행복증진, 자유 보장 그리고 사회에 좋은 영향으로 끼치는지가 정의로움을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행복, 자유, 미덕을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셀던은 도덕과 시민의식을 강조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를 제시하면서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우리의 사고 영역에 맞겨두었다.

 

그러면 과연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평소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판단과 선택을 하면서 그것이 정의로웠는가 생각하진 않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한 판단과 선택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에 대해 논쟁하곤 한다.

 

사람들은 평소 정의에 대한 인식과 자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사회나 국가간의 존립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개념이다.

 

관념적이지만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의는 문화나, 종교, 정치체계, 도덕적 가치관 등의 영향을 받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얼마전 미군은 아프칸에서 완전철군했다.

 

이 전쟁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탈레반의 폭정에 시달리는 아프칸 국민들을 구하는 자유의 전쟁이었지만 탈레반 세력의 입장에서보면 힘을 앞세운 미 제국의 침략일 뿐이었다.

 

실제로 이 전쟁에서 수 만명이 죽거나 다쳤고 2000조원의 전쟁경비가 발생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유수호의 정의일 수 있으나 탈레반의 입장에서는 부당한 침략인 부정의 일 수 밖에 없다. 종합부동산세 부과기준이 9억에서 11억으로 상향됐다.

 

이 정책은 부자들에게는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고 서민들에게는 세금 부담을 가중 시킬 수있는 좋지 않은 법이다.

 

정의는 인간의 삶속에서 판단의 갈등과 고민을 유발시키며 끝없는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위대한 학자들이 제시한 공리주의, 자유주의, 기회균등, 공동선 등의 개념들은 어느 한 관점으로 보았을때는 옳은 판단이었으나 또 다른 관점에서는 모순이 있는 주장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당신에게는 옳지 않을 수 있다.

 

막연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나와 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을 이끌어야 하며, 정의에 대한 개인적인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회 공동체 또한 필요하다.

 

나아가 선택의 순간 찾아오는 도덕적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

 

복종하기 보다는 규범에 도전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는 미래지향적인 사고가 딜레마 극복의 출발점이다.

 

소설가 아서 클라크는 가능성의 한계는 불가능의 경계를 넘어서야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나와 사회, 국가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개인과 전체에 보다 낳은 결과를 가져오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의 실현과 자아성찰의 출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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