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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精誠)

2021-02-09 오후 20:04:20


  연영찬기자

 

인간은 태어나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수 없이 많은 인연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아니면 불가지론(不可知論) 혹은 숙명(宿命)인가?

 

여기 이 순간에 있는 나는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일까?

 

아버지, 어머니가 날 낳으셔서 그냥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의 섭리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등 나의 조상들이 있었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가 있어 존재하게 된 것이고 지구는 태양 그리고 우주가 있었기에 탄생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으로 태어났지만 그 의미는 영원에 가깝게 길고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여기에 있는 것이다.

 

1378000만년전에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가 빛의 속도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지구가 만들어 졌고 그 속에서 내가 태어난 것이다.

 

1378000만년의 지극한 정성(精誠)이 쌓인 결과물이 바로 나인 것이다.

 

신의 섭리와 같은 지성(至誠)으로 나는 여기에 있다.

 

내가 여기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먼 시간의 길을 떠나 왔는지.

 

영원이라는 무수한 시간 속, 깃털 같이 가볍고 비록 찰나와 같은 한 순간 짧은 인생이지만 억겁의 먼 길을 돌고 돌아오는 지극한 정성이 함께 했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끝을 헤아릴 수조차 없는 아름답고 영원한 우주의 섭리인 지극한 정성(至誠)의 결과물이다.

 

영원한 우주의 섭리로 태어난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대하는가?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

 

나와 연관된 일에는 관심을 갖고 정성을 들이지만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해결해 주려 한 적이 있는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준 것보다 더 받으려한다.

 

물질적, 정신적인것 모두다 말이다.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작품인 中庸(중용).

 

中庸(중용)은 유교의 기초가 되는 책으로 23致曲(치곡)편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其次 致曲(기차 치곡)

그 다음은 일부분의 선(), 즉 사소한 일에도 극진함을 이르는 것인데

 

曲能有誠(곡능유성)

사소한 일에 극진함에도 정성이 있어야 하며

 

誠則形 形則著(성즉형 형즉저)

정성스러우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드러난다.’

 

著則明 明則動(저즉명 명즉동)

드러나면 곧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動則變 變則化(동즉변 변즉화)

움직이면 변하고 화()할 수 있으니

 

唯天下至誠 爲能化(유천하지성 위능화)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스러움만이 능히 변화시킬 수 있다.

 

이 구절은 조선시대 정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역린(逆鱗)에 나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영화에서는 이 구절을 좀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의역을 한 명 장면으로 감동을 더해주고 있다.

 

中庸(중용) 23致曲(치곡)

작은 일에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唯天下至誠 爲能化(유천하지성 위능화)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의 궁극(窮極)은 지극한 정성(至誠)이다.

 

지극한 정성만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말은 우리가 자주 쓰던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무슨 일이든지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그 어떠한 어려운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다.

 

어렵고 힘든 생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살아가야 한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기에 말이다.

 

비록 가시밭길 같은 인생일 지라도 희망의 싹은 자라난다.

 

그 싹이 꽃을 피워 세상을 희망이라는 환한 빛으로 물들게 하려면 지극한 정성이 필요하다.

 

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진실 되고 성실한 마음만이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정성은 진실이며 성실이고 이는 나의 희생을 수반해야 나타난다.

 

내 영혼을 다 바칠 수 있는 정성만이 나와 세상을 감동시켜 변하게 할 수 있다.

 

나의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과 희생이 바탕이 된 지극한 정성만이 오로지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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