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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存在)와 부재(不在)

연영찬기자

2019-03-06 오전 09:52:30

 

 

실제로 현실에 있는 것, 현상 변화의 기반이 되는 근원적인 실재.

 

우리는 존재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존재에 의문을 품는다.

 

영혼은 있는 것일까?

외계인, ufo는 존재할까?

상대방이 나를 좋아할까?

내 생애 행운이 찾아올까?

 

등 등 물질적, 관념적 존재에 대해.

 

어떤 이는 영혼과 외계인의 존재를 믿지만 믿지 않는 이도 있다.

 

우리는 내가보는 물질의 존재는 물론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존재도 믿는다.

 

그러면 과연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존재와 부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에서 어떤 이를 특정해 자각할 수 없다.

 

그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 한다.

 

나와 눈이 마주치거나 몸이 부딪치는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비로소 그는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나가오는 것이다.

 

존재와 부재는 관념에 근거한 것으로 내 기준의 의미부여에 따라 부재가 존재로 존재가 부재로 바뀔 수 있다.

 

이처럼 존재와 부재는 공존하며 그 기준은 나의 관념에 근거한다.

 

내가 보고 경험하거나 생각하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보고 만지고 느꼈기에 존재한다.

 

이렇듯 존재와 부재는 나의 주관적인 기준에 근거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했지만 부정하면 부재하는 것이고 내가 보지 않았지만 간절히 상상하고 원하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실존하는 것일까?

 

자동차는 이동수단으로, 침대는 수면을 취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처럼 존재란 목적이 분명하며 본질이 앞선다.

 

, 목적이 분명하지 않고 본질이 앞서지 않으면 존재가 아닌 부재라 할 수 있다.

 

존재하기로 결정될 때부터 존재의 목적이 정해지며 그것은 매우 뚜렷하며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 것을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본질보다 존재가 앞선다.

 

그래서 사람은 실재 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마음, 빛을 밝히는 전기,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공기 등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어떤 사람은 인식하고 어떤 사람은 하지 못한다.

 

존재도 일정한 수준에 있는 우리의 경험 판단 속에서 표현되는 개념이지, 이 판단을 넘어선 영역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고 헤겔은 말했다.

 

포이어바흐는 물질과 관념을 구별하지 않은 존재 개념을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는 이유로 물질적인 것이든 관념적인 것이든 존재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게 되면, 이 개념은 추상적인 개념이 되어버린다.

 

그는 존재가 존재하는 사물만큼 다양하다고 주장하고 존재를 물질적·자연적·객관적 실재로 보았다.

 

물질적, 관념적인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

 

주관적인 관념에 의거해 생겨난 존재는 더욱 그렇다.

 

관념적인 의지로 싹튼 존재와 부재는 결국 나의 생각에 따라 결정되는 주관적인 것으로 결코 확신해서는 안된다.

 

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고 부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존재할 수도 있기에.

 

완전하지 못한 존재여부를 확신해 나와 상대방을 난처하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관념의 오류 속에 태어난 수많은 존재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어떤 존재와 공존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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